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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명이 나타난다 운영자 2018-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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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을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후4:6-12>


1.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영생을 얻은 사도들은 더 이상 영생을 위하여 자기 인생을 위하여 준비할 것이 없다. 다만 그리스도를 따라 그를 위하여 사는 자가 되었다. 그래서 각처로 다니며 주와 함께 복음을 전하였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훼방하고 미워하고 때리고, 잡아가두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다.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사도들이 그들과 더불어 다투거나 원망하거나 미워하거나, 저주를 퍼붓지 않고 그들의 저주를 받아 축복해 주고, 그들의 미움을 받아 선대하고, 그들의 원수맺는 것을 받아 사랑해 준 것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이 사도들을 사랑하시고 완전히 사랑하사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사망에서 건져주시는 사랑을 입었기 때문이다.  

2.우리는 질그릇이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 곧 그리스도를 얻게 하시는 성령님을 부어주셨으므로 그 생생한 증거와 임재가 그들 안에 거하셨다. 그래서 사망의 권세가 그들을 방해하고 훼방하려고 그들을 사방으로 우겨쌀지라도 그들은 우겨싸임을 당하지 않았다. 우겨싸려고 해도, 그것을 가만히 두어도 생명은 사망에게 우겨싸임을 당하지 않는다. 그래서 실컷 그러라고 해라. 그들이 행하면서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상황이 안풀리고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얼토당토 않는 일을 당하여 앞이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 되어도 낙심하지 않는다. 낙심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으므로.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요 주님이 일하실 것이므로. 전능하신 주님이 일하시므로.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분은 그들이 아니라 주님이므로. 그것을 모르면  그들과 더불어 다투거나, 낙심하고 후퇴하거나, 원망하고 불평해 마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게 박해를 받아도 하나님께는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누군가 미워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면 버려진 것처럼 여겨지고, 정죄도 당하기 쉽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 안에 있는,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미워하며 박해하고 모진 일을 당할지라도 하나님께는 버림을 당치 않는다. 또 거꾸러뜨림까지 당하였다. 바닥에 패댕이쳐졌다. 그래서 외상을 입고 수치를 당할지라도 망하지 않는다. 결코 망하지 않는다.

3.이같이 하는 것은 그들이 진리를 알고 실상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어둠 가운데서 어둠의 세력에게 속아, 그들이 하는 행동 하나, 말 하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이 얼마나 죽을 죄를 짓고 있는  것인지 모르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한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이룬 사람은 그 마음이 있다. 그래서 그들로  더불어 싸우지 않는다. "내가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라고 바울 사도도 말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그를 거역하고 대적하며 멸시하는 자들 때문에 내려오지 않으시고, 당신이 죽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성령으로 그를 살리셨다. 예수님은 아무, 스스로를 살리려는 일을 아니하시고 자신이 죽임을 당하셨다.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그를 부활케 하셨다. 그는 생명을 다시 얻으셨다.  그런 것처럼, 제자들도 자기들의 복음을 들을 자들을 향하여 다투지 아니하며, 들레지 아니하며 그러기 위하여 자기를 죽였다.  곧 자기를 부인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 안에 사시는 주께서 나타내시고 행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생명이다. 그 생명이 이렇게 자기가 부인되어질 때 나타난다. 그러면 그들의 말을 듣는 자들이 살아난다.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4.오늘날 주의 복음을 위해 사는 자들의 안타까움은 자기의 연약함이나, 인격적인 결함이나 죄의 문제들이다. 이런 것은 반드시 복음에 막힘을 가져올 수 있다. 사람에게 전파하는 복음의 말씀은 전하는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그어면 어떻게 할까? 성도는 잠깐만 만나고 항상 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비밀을 가지고 살아갈까? 베일에 싸여서 살아갈까? 아니다. 정면 돌파다. 그 덕분에 나도 회개하는 거지. 정직하게 회개하고, 정직하게 인격을 키워갈 기회가 되지 않을까? 정직의 문제다. 정직하면 연약함을 인정하는 게 되니까. 그래도 인정하리라. 그래도 엎드리리라. 그것이 자유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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