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중에서부터 움직임이 별로 없었다는 나는 세상에 나와 살면서도 움직임이 참 적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람으로 용납받으면서 살고 구원의 은혜 안에도 끼워주셔서 얼마나 기막힌 기쁨을 누리며 사는지...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물고기가 물을 머금고 뿜고 하며 살듯이 내게는 그렇게 하는 물과 같다.
부족한 것이 남다르게 많던 나는 그래서인지 가족들과 이웃들과 하나님께 은혜를 더 많이 입었다. 주님의 방법과 길로 나를 이끌어 오신 주님은 나로 하여금 내가 해야할 사명으로 여겼던 문학을 통하여 인생을 탐구하게 하시고 자연 그것은 철학과 종교적인 사색과 추구로 이어지게 하셨다. 나는 결국 그 초등학문의 끝(개인적으로)인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내가 정직하다면 살 이유를 모르면서, 그 가치를 모르면서 살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이 방황하였다. 삶의 힘든 굴레 속에서도 궁극적인 고민은 나를 놓지 않았고 나는 그 의문을 품은채 맥놓고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진정한 나의 길, 구도의 길로, 어쩌면 다시는 나를 건질 수 없는 그런 길이 될지도 모를 길로 걸어들어가려던 문턱에서 나꿔챔을 당하였다. 황급한 주님의 손이 나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올리신 것이다. 지금에야 와서 돌아보면서 그 벌어진 영적인 세계의 일들을 이같이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 사망의 구덩이, 깊디 깊은 구덩이를 잊지 못한다.
예배시간, 길디 긴 말씀을 들으면서 내 속에서는 예배당 천정이 다 날아갈 만큼 길고 끝이 없는 함성을 올려보냈다. 주 하나님,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니요, 이같이 선하신 분, 이같은 은혜를 베푸신 분, 참으로 믿을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시네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하나님이 만유의 주님이시며,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은,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피흘려 주심으로 다 이루어주셨다는 사실은 세상을 이고지고 떠받치고 살려고 했던(......) 모든 숙제와 짐을 내려놓게 하셨다. 얼마나 훨훨 날았는지 모른다. 꿈만 꾸면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고, 곧게 뻗은 새로만든 쿠션좋은 길을 자전거를 타고 냅다 쌩- 하고 달려갔다.(실제는 자전거 못탐) 갓태어난 어린아기처럼 주님 품에서 맘껏 누리며 맘껏 먹고 자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전혀 생각도 못했던 교회, 목회까지 맡겨주셨다. 그런데 잘 봐주시던 스승이시고 영적 아버지이시던 목사님이 계실 때에는 그덕에 잘 놀다가 장단 쳐주는 이가 없으니 풀이 죽어버렸다. 그때에도 난 늘 주님 따라, 주님과 즐거워하며 살았는데 어찌 이런 결과가......그런데 그런 나를 너무 당황스러워하는 것이 교만한 것이지. 당연한 과정일터. 흠!(잘한다! 이건 주님의 응원 ㅋ)
사실 무얼 말하려느냐 하면 나의 행동부족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이 이것을 모르실까? 아시지.
때로는 멀리서 이러한 메신저의 메시지 가지고도, 이러한 인터넷상의 교회가 주님이 사용하시는 메신저가 되는 것을 보며 이래선 안되겠다 생각한다. 우리들의 인터넷교회, 믿음을 가지고 항해를 계속하자. 무엇으로건 우리 앞에 우리의 머리, 대장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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