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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비유 정금녀 2019-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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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비유



마21:28-32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쨰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하였더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1. 예수님의 이번 예루살렘 방문은 여늬 때와 다른 것이, 이번 유월절 방문에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중요한 사명의 길이었다. 그것은 예수께서 진정한 유월절 양이셨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나귀를 타고 들어오셨는데, 스가랴서 9:9의 말씀을 이루시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오셔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실 때에 이사야의 글을 읽으시고, "오늘날 이 말씀이 너희에게 응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가르치시고, 행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 등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사도들은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이 사실을 반복해서 밝히고 있다.


2. 본문의 말씀이 나오게 된 이유는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고 '내 아버지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였는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신 예수님에게 나아왔다.​ 그리고 "도대체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며, 그 권위는 누가 너에게 주었느냐?"하고 따져 물었다. 이 질문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그들 스스로의 대답 속에 답이 있음을 알게 하셨다.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서냐 아니면 사람에게로서냐?" 그들은 난처하였다. 요한의 침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면 그럼 어찌하여 너희가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하면 백성들이 그를 선지자로 믿고 있으므로 백성들이 두려워서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선지자가 나타나면 누구보다도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이나 백성의 장로된 자들이 더욱 깨어서 살펴보고 진짜 선지자인지, 가짜인지 분별하고, 자기 자신부터 회개하고 믿어야 구원을 받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진리대로 분별하여 주님께 순종하기보다 자기들의 계산 때문에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침례 요한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면 마땅히 회개하고 가서 침례를 받고, 그가 침례를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백성들처럼 믿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과 지위와 행위로 스스로 높아져 있고, 눈은 감겨 있고 귀는 막혀 있었다. 자기 중심적인 이유 때문에 자기 영혼의 구원을 흘려 떠내려 보내고 있는 것이다.


3. 예수께서는 그들이 모른다고 하자 자신도 누가 그런 권위를 주어서 그렇게 하시는지, 무슨 권위인지 안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안믿는 자들이 믿을 만한 근거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굴복되어 있지 않으니까 자기중심의 육신적인 이유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서 그냥 돌아서지 않고 비유를 말씀하셨다. 두 아들의 비유이다. 맏아들에게 아버지가 가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자 바로 가겠다고 하고서 가지 않았다. 둘째 아들에게 가서 동일하게 말하였을 때에 둘째 아들이 습관적으로 싫다고 가버리다가 아버지가 불쌍하고 안되어서 돌아섰다. 그리고 포도원에 가서 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일하였다. 이 말씀을 하시고 두 아들 중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물으셨다. "둘째 아들이니이다" 아마 이 대답도 대제사장이나 백성의 장로들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정직하고 단순하게 대답할 수 없다. 뭐라고 해야 하나 하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왜냐하면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셨다. 


4.요한 선지자가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천국을 믿어라 하고 외칠 때에 그가 과연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지 아니면 스스로 선지자라고 하여 온 자인지 겸손히 하나님 앞에서 살펴 엎드려야 할 첫번째 사람들이 유대교 지도자여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과 그 말씀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특권층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조건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그들은 자기들 스스로가 높아져 주인되어 있으므로 도리어 장님과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단순히 무지하고, 못알아보아서 그렇다면 바울 사도와 같은 일도 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의 경우는 믿을 만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요한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요 사심이 없이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여 보내신 일을 위하여 왔다는 것을 믿은 자들은, 그가 "내가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는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이스라엘에게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사도들의 대다수는 요한을 선지자로 믿었고, 요한의 증거를 받았으며 요한을 버려두고 예수께로 갔던 것이다. 가서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자기들의 육신적인 생각과 뜻으로 선지자 요한을 무시하던 지도자들은 예수님도 믿을 리 만무하였다. 요한 선지자의 가르침과 증거를 받은 세리와 창녀가 하나님의 나라에 먼저 들어갈 것이다. 믿지 않은 너희도 나중에 들어갈 것이란 뜻이 아니다. 이미 믿은 자들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너희들도 회개하고 믿으면 들어간다는 것이다. 믿지 아니하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5.대제사장이나 백성의 장로들과 같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들을 밝히 볼 수가 없다. 자기가 더  중히 여기는 일들을 위하여 너무나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과 쓰레기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믿음에 있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굴복되어 조심히 살펴 하나님의 뜻을 살핀다. 이것이 온유함이다. 니고데모 같은 사람이 이런 유형이다.

지금 내가 세리나 창기와 같은 삶을 살던, 자타가 인정하기를 죄인의 길에 있던 자라도 깨어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은혜인가? 그러나 자기가 율법에 대하여 얼마나 아는 것이 많고, 얼마나 높은 지위에 있고, 사람들에게 얼마나 존경받고 있는지... 또 내가 얼마나 열심 있는지... 하는 등에 빠져 있는 사람은 그것이 걸림돌이 되어 정작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못알아본다. 아니 자기중심적인 유익에 매여 구원조차 저버린다. 에서보다 망령된 일이다.

구원받는 것은 지금 내가 대제사장이냐 백성의 장료냐 세리냐 창녀냐 하는 외적인 것에 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구원, 성경 말씀대로, 예언하신 대로 다 성취하셔서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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